2014년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나는 도로명 주소를 꼽겠다. 이미 작년부터인가 심심찮게 편지봉투에 적혀 있는 생소한 도로명 주소를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곳에서 도로명 주소를 사용해야 한다.

 무한 경쟁 풍토를 조성한 정부의 책임인지 아니면 민족 고유의 DNA에 새겨진 특성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최고에 집착한다. 자신의 직업은 최고의 일이어야 하며, 자기가 가진 차도 최고의 차,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도 최고의 동네여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최고의 직업, 최고의 차, 최고의 지역을 가질 수 없으므로 우리는 합리화를 한다. 그 일환이 '의미 부여' 이다. 예컨대 '이 동네는 조선 시대 시절에 이러저러한 사연이 있었던 곳이므로 대단한 곳이다.' 와 같다. 의미 부여를 통해 소속된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부족한 자존감을 보충한다.


우리나라에서 주소는 이정표가 아니라 꼬리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주소의 역할은 이정표가 아니라 꼬리표이다. 아무도 주소를 보고 가는 길을 찾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지도, 오늘날에는 내비게이션을 통해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을 뿐이다. 이전 주소 체계는 매우 효율적으로 '꼬리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새로운 주소는 아무래도 이정표를 표방할 모양이다. 정부의 인식도 그렇다. '도로 기반의 새로운 주소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부여되어 길을 찾기 수월할 것' 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주소를 자기 표현의 수단이 아닌 경로 탐색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정부는 '길 찾기' 라는 한쪽 측면의 효율성에만 집중한 나머지 '자기 표현' 이라는 또다른 측면에서의 효율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길은 덩어리가 아니라 선이기 때문에 소속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길은 자기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없다. 터치 몇 번만 하면 길을 찾을 수 있는 정보화 사회에 이미 효용성을 잃은 가치인 경로 탐색의 효율성을 위해 우리는 더 이상 '동네 자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참조 시사IN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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