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후루이치 노리토시 저, 이인숙 옮김. 민음사.

1.

 지난 12월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 인권조례를 거부했다. 공식적인 서울시의 입장은 ‘만장일치가 아니다’ 였지만, 보편인권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여론에 밀린 것이었다. 박원순 시장의 개인적 신념이 어찌 됐든, ‘정치인으로서의 박원순’은 여론의 압박을 받아내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항상 드는 의문이다. 많은 의미 있는 정치적 판단들은 여론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치인의 개인적 신념을 꺾게 만드는 부담을 가진 강력한 ‘여론’은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는가? 실체는 있는 것인가? 여론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2.

 ‘무언가를 하고 싶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품은 젊은이들이 모일 수 있는 간단명료한 ‘출구’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기꺼이 그 문을 박차고 들어갈 것이다. (144p)

 젊은이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하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일상을 벗어나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면 ‘불끈불끈’ 하여 그곳으로 뛰어들 것이다. 라는 저자의 분석에 동의한다. 나 또한 드물지 않게 일상의 지루함과 노잼을 경험하고 있으니까.

 지난해를 뜨겁게 불태운 ‘비일상‘을 꼽자면 러버덕과 피카츄가 있다. 석촌호수의 물이 빠지고 있다는 흉흉한 소식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파가 대왕오리의 모습을 보러 잠실로 몰려왔으며, 호수변에 설치된 부스의 러버덕 굿즈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DDP의 피카츄 행진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하루만에 행사가 중단되었을 정도였다. 


3.

 지난해에 젊은이들이 반응한 ‘비일상’은 극도로 소비자적이었다. 러버덕에서 허니버터칩까지 모든 비일상적 이벤트들은 한나절 정도만 투자하면 경험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금전적 지출을 강요하고 있었다.

 왜 국정원 선거개입과 세월호 진상규명은 외면받고 러버덕과 허니버터칩은 주목받았는가? 그것은 아마 전자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관심과 의지,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등록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고, 중간고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고, 토플 점수를 따야 하기 때문이고, 면접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비일상을 향한 억압된 욕구를 누구보다 잘 파악한 것은 기업이었고, 잘 만들어진 인스턴트 비일상을 전시함으로써 그것을 소비하도록 만들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의 ‘불끈불끈’에 대한 욕구는 그런 식으로 해소된다. 해소하도록 강요된다.


4. 

 진지하게 보편인권과 고용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자기계발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뒤엎어야 한다. 하지만 양성 피드백되는 신자유주의는 혁명에 강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다. 당장 사회를 뒤엎는 것은 포기하자.

 ‘성적 지향으로 인해 차별받아선 안 된다‘ 를 논리적으로 설득하거나, 보편인권을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를 설파할 시간은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다. 서울시청을 점거하고 보수 기독교 단체와 싸우는 일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적극적인 활동가 이외에 일상을 영위하던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일은 어렵다.

 작년에 열린 퀴어축제는 성소수자 외에도 많은 이성애자 젊은이들이 참여했다. 퀴어축제는 기본적으로 성소수자 인권보장을 외치는 ‘진지한’ 철학을 지녔지만 그것은 축제라는 예스잼의 형태로 구현되었고, 과도한 시간적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다시 말해 퀴어축제는 ‘인스턴트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의하게 만드는 것과 ‘그래야 하기 때문에’ 동의하게 만드는 것은 다르지만, 가지는 효과는 다르지 않다. 사회적 메시지를 인스턴트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분명 최선이 아니다. 그러나 아예 전달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5.

 우리 사회에서 여론은 ‘상식’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다. 다수가 동의하는 가치는 상식이 된다. 상식과 가치의 옳음(우리가 생각하는)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인권조례는 거부당했다.

 옳음은 어떻게 해서든 상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간편한 방법은 ‘젖어들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