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이런 고민을 할 계기가 없었다. 모든 것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선배들과 선생님들에게는 깍듯이 존대하면 되고, 동기들과 후배들에게는 반말을 하면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오고서 서로 나이가 다르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반말과 존댓말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한국어의 높임 체계를 예시로 들며 ‘한국어는 예의 바른 언어’ 라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과연 높임 체계가 인간 존중이라는 예절의 기본적인 취지에 부합되는 것인지, 또는 ‘높임 예절’을 잘 지키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한 성찰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어는 예의 바른 언어가 아니다. 예절의 근본 정신은 인간의 인격에 대한 존중이다. 인간이라는 존귀한 존재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표현하고, 내가 대접받기 위해서는 상대방 또한 대접하여야 한다는 상호 존중의 원칙에 따르는 것이 바로 예절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어의 예를 보자. 한국어에서 존대가 ‘서로에 대한 예절’의 의사로 사용되는 경우는 처음 만났을 경우 뿐이다. 이 외에 상급자와 하급자 간에 사용되는 존대와 하대는 상호 존중은커녕 반말 사용을 통해 상대방의 존엄성을 짓밟고, 무의식적인 위계 관계를 형성하여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데 쓰인다. 결론은 높임 체계는 예의 바르고 서로 존중하는 언어의 증거가 아니라 폭력적이고 봉건적인 언어의 특성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의사를 어조와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 언어 구조적으로 강제하고 있는 한국어의 특성은 한국에서 예절의 의미가 변질되게 하는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경직성과 폭력성을 일상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한국 사회에서 예절은 상급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뜻한다. 상급자와 하급자가 섞여 있는 상황에서 어떤 문제에 대하여 합리적인 과정을 통한 해결이 아니라 권위에 의해 해결하거나, 자유분방한 분위기 또는 서로 반말을 할지를 결정할 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대하는 상급자에게만 있다는 사실, 결국 언어를 통해 상급자에게 무한한 권력을 부여하는 한국에서 한국인들은 권력과 위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나이, 직급과 같이 위계를 형성할 수 있는 요소들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다. 해마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존대 사용 여부로 인한 살인 사건들은 권력에의 의지를 가진 한국인들의 서로에 대한 폭력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다. 권위에 의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특성은 ‘억울하면 너도 권력자가 되어라’ 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서로를 파멸로 몰고 가는 과도한 교육열과 무한 경쟁 사회 또한 한국어의 위계성에서 비롯된 권위주의와 유교적인 가족 이기주의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언어는 생각을 지배한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사고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사고 구조는 무서울 정도로 바뀔 수 있다. 한국에 만연한 권위주의와 파시즘은, 전적으로 한국어의 특성에서 기인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높임 체계가 상당한 기여를 했음이 사실이다. 진정으로 우리 내부의 ‘일상적 파시즘’을 제거하려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한국어의 높임 체계를 전면적으로 손질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