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는 존대어로 진행하겠습니다. 여행기라는 글의 특성상 이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8시에 비행기를 타야 했으므로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동대구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공항리무진 첫 차가 6시에 있는데, 보통 1시간 20분 정도 걸리니까 체크인 시간을 고려하면 빡빡합니다. 동대구역에서 구포역행 무궁화호가 새벽 2시 43분에 출발하니 이걸 타고 구포역에 도착한 뒤, 좀 기다렸다가 지하철 첫 차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정말 피곤한 방법이므로 데려다 줄 사람이 있으면 자가용으로 가는 게 낫겠죠.

간사이공항에 도착하니 에어컨을 트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후덥지근한 느낌이 전해집니다. 오사카는 위도도 낮은데다가 해안가라 습도도 굉장히 높으니 여름에 더위 지옥이 되는 건 필연적입니다.

곧바로 JR패스를 교환하기 위해 공항 바로 앞에 있는 터미널 건물로 향했습니다. 1터미널 정문으로 나오기만 하면 보이는 건물이므로 찾아가고 말고 할 것도 없지요.

패스 교환을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산요 신칸센의 지연 안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히메지행 표를 발권할 예정인데 지연이라니 좀 걱정이 돼서 물어볼까 했지만 창구 직원이 별 말을 하지 않길래 그냥 나왔습니다. 참고로 JR패스 교환창구에서 바로 열차 발권을 할 수 있으니 이왕이면 이동 계획을 미리 세우고 JR패스를 교환받은 다음 바로 발권을 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도카이도 신칸센이야 워낙 좌석공급이 많고, 현지인들은 노조미를 주로 타고 다니니 JR패스로 탈 수 있는 히카리는 자리가 넉넉하지만 도호쿠 신칸센은 열차 등급이 하나밖에 없으니 좌석 경쟁이 치열합니다. 특히 아오모리나 신하코다테호쿠토까지 가는 장거리 이동을 시도할 경우 바로 예매를 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설마 매진이겠어?' 하다가 결국 도쿄에서 센다이까지 서서 가는 참사를 겪어 버렸습니다.

공항특급 발차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공항 안의 편의점에서 사온 일본인의 소울푸드, 야키소바빵. 탄수화물에 탄수화물을 끼워넣은 악랄한 음식이므로 긴급히 칼로리 공급이 필요할 경우에만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로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사카 관광을 바로 하려는 관광객들은 보통 난카이를 타게 됩니다. 종착역이 오사카의 명소 도톤보리와 바로 연결되어 있는 난바역이고 가격도 JR에 비해 조금 더 저렴하기 때문이죠. 시간이 많다면 직통열차인 라피트 말고 200엔 정도 더 저렴한 공항급행을 타기도 합니다. JR선은 일단 비싸긴 하지만 여러 방면으로 직통하는 열차가 많아서 신오사카나 교토 쪽에 숙소가 있는 여행객들이나, 저처럼 패스가 있는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게 됩니다. 상황에 맞게 적절히 골라서 이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교환받은 JR패스. 잃어버리면 큰일나는 물건입니다. JR패스는 워낙 고가이고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보니 회사 차원에서 무단사용이나 복제에 부지런히 대응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패스의 디자인을 바꿉니다. 이번 패스는 올해 2월에 개정된 디자인입니다.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까지 대충 1시간쯤 걸리는데, 인천공항에서 서울역까지 걸리는 시간보다는 조금 짧습니다. 공항 주변 지역은 전형적인 교외지역으로 논밭이랑 빌딩이 섞여 있는 모습을 보다 보면 역시 공항이 참 멀긴 멀다는 느낌입니다.

홈리스와 외국인 배낭여행객이 공존하는 곳, 신이마미야.

텐노지역에서 열차를 갈아타서 신이마미야역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묵을 숙소가 있는 곳인데, 선로 건너편에 보이는 그래피티에서도 알 수 있듯 여기는 오사카의 슬럼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여길 왜 왔냐 하면 저번 포스트에서도 설명했듯이 숙소 값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토요코인의 반도 안 되는 값으로 개인실에 에어컨 나오고 따뜻한 물에 목욕할 수 있는 숙소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이곳 신이마미야에서는 여행 중 2박을 묵었는데 딱 가격만큼의 퀄리티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느낌입니다. 단 숙소에 따라 빈대가 나왔다는 리뷰가 있으니 검색을 잘 해 보고 예약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묵었던 츄오 호텔, 라이잔 호텔에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동네 분위기는 대충 이렇습니다. 이런 분들은 만국공통인 듯.

숙소 체크인도 했으니 이제 히메지로 가는 신칸센을 타러 신오사카역으로 갑니다.

일본의 여객열차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대부분 지하철과 똑같이 고상홈 대응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덕분에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가 없어 승차시간과 휠체어 접근성이 훨씬 우수하지요. 일본 철도의 칼같은 정시성은 이런 요소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칸센을 타고 30분 정도 달려 히메지역에 내립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풍경이 인상적입니다.

일정이 좀 밀려서 도착하니 벌써 두 시가 넘었습니다. 바로 미리 찾아 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점심은 치라시스시(회덮밥으로 번역하면 무난)가 맛있다고 까날 님의 블로그에서 소개된 스시소우(すし宗). 역에서 히메지성 쪽으로 3분만 걸으면 찾을 수 있습니다.

새것은 아니지만 정갈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가게 분위기. 창문 한켠에는 히메지성의 옛 지도를 걸어놓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손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 두 분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 찍은 음식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니기리스시(쥠초밥) 종류도 매력적이었지만 아무래도 유명한 메뉴를 먹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1300엔짜리 치라시스시를 시켰습니다. 다양한 재료들을 하나씩 맛보며 달라지는 식감들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론 달큰하게 양념된 문어가 참 맛있었습니다. 양이 조금 아쉬웠지만,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은 탓이라 생각하며 식당을 나왔습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는 다시 히메지성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역에서 히메지성까지는 버스를 타기보다는 걷기를 추천하는데, 거리도 워낙 가까울 뿐 아니라 버스를 타면 걸으면서 볼 수 있는 사소한 재미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걷다 보면 흥미로운 가게들이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가게. 부쇼우(무장)맥주라 적어 놓고 사무라이 갑옷을 가져다놓은 것이 재미있습니다. 지역 맥주인 모양인데 한 번 마셔보고 싶었지만 곧 히메지성에 들어가야 하기에 그만뒀습니다. 아직 갈길이 멀지요.

성 앞에는 관광용 인력거들이 꽤 많습니다. 열심히 호객하시던데 날씨가 흐려 타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여행이었으면 고려해볼 법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은 역시 제 발로 돌아다녀야 맛이죠.

위엄 넘치는 히메지성의 해자

천수각은 나지막한 언덕 위에 지어져 있습니다. 돌로 지형을 돋운 다음 그 위에 다시 켜켜이 외성, 내성, 천수각을 쌓아올린 형태로,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극에 달한 일본의 축성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천수각에 입장하려면 표를 구매해야 합니다. 성인 1000엔.

천수각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렇게 직선으로 되어있지 않고 벽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길고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면 드디어 천수각 내부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히메지성은 내부까지 보존되어 있는 일본의 몇 안 되는 성 중의 하나입니다. 의외로 현대에 와서 겉모습만 복원한 성들이 많습니다. 그 유명한 오사카성도 사실 콘크리트로 외형만 복원하고 내부는 그냥 박물관+전망대입니다(안에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히메지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 한 귀중한 성이기에 천수각 안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합니다.

천수각 내부는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대천수 두 개가 가운데에 있고, 방들과 복도가 그 바깥을 두르고 있는 형태입니다. 벽면을 따라 돌기가 나 있는 것이, 검을 보관하는 무기고였을 것으로 추정되네요. 천수각은 낭비되는 공간 없이 기능적인 효율을 추구한 건물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수각은 유사시에 농성장과 사령탑의 역할을 수행하는 건물이었고, 영주는 평시에 다른 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이죠.

각 층 사이는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최상층에 올라가면 이렇게 히메지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날씨가 흐려서 태평양이 보이지 않는게 좀 흠이군요. 시간도 늦어지고 해서, 히메지성은 이쯤 해두고 다음 여정으로 떠나기로 합니다.

과연 일본 3대 명성이라고 불릴만 한 모습입니다.

다시 히메지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신코베역으로 떠납니다. (계속)